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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감사제도

고려시대의 감사제도를 알아볼까요?

고려시대에는 어사대라는 감사기관이 있었어요. 어사대에서는 나라의 정치가 잘 되고 있는지 잘못되고 있는지를 그때그때 논의하여 방향을 제대로 잡는 일을 했고, 관리들의 잘못을 가려내어 그에 따라 처벌을 하거나 관직에서 물러나게 하는 일을 했으며, 심지어는 백성들의 의례, 복장과 가정생활 등 풍속까지 바로 잡는 일을 했어요. 특히, 왕은 관리를 임명하거나 법을 제정할 때에 어사대의 동의를 얻어야 했어요.

이야기한 토막
“일반 백성을 노비로 선물했다가 처형된 사람”
고려 목종 10년(1007년) 어사대에서 왕에게 아뢰었어요. "경주의 융대라는 사람이 거짓으로 원성왕의 먼 자손이라고 하면서 일반 백성 500명을 자기의 노비라고 속여 궁인 김씨, 평장사 한 인경, 이부시랑 김낙에게 선물로 주고는 그 사람들을 자기의 후원자로 삼았습니다.

심문하여 본 결과 이 모두가 사실임이 밝혀졌으니 이 사람들을 죄주기를 청합니다" 왕은 곧 융대라는 사람은 죽이고, 한인경과 김낙은 귀양보내고, 김씨는 구리 100근을 벌금으로 물게 했어요.

당시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모두 어사대에서 옳은 일을 했다고 칭찬했어요.

신분사회였던 고려시대의 어사대 관원은 귀족 가문에서만 뽑았어요. 특히 신분, 능력, 성격 등 여러 면에서 흠이 없는 사람을 뽑았어요.

어사대 관원은 학식이 뛰어나고 덕행이 있어 과거시험 감독관인 지공거에 임명되기도 했고 외국에 사신으로 보내지기도 했어요. 또 어사대의 관원은 업무와 관련된 일로 다른 기관에서 함부로 체포하지 못했어요. 어사대는 나중에 사헌대, 감찰사, 사헌부 등으로 이름이 바뀌었어요

이야기한 토막
“정부 창고의 쌀을 가로챈 관원을 처벌”
고려 신종 때였어요. 노언숙이라는 도재고(나라의 제사에 쓰이는 재물을 보관하던 창고)의 벼슬아치가 높은 사람의 부탁이라고 하면서 서리(행정실무를 맡은 관원)와 짜고 창고에 있는 쌀 여러 섬을 꺼내 가져갔어요. 창고를 지키던 장교(군사실무를 맡은 관원)가 이것을 위에 보고했어요.

어사대에서 이 문제를 조사하였는데 사실로 밝혀졌어요. 그래서 훔쳐간 쌀은 모두 다시 거두어 들이고, 노언숙과 서리를 포함하여 관계책임자 20여 명을 섬으로 귀양보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