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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감사제도

조선시대의 감사제도를 알아볼까요?

조선시대의 감사기관으로는 고려시대의 어사대를 계승 ·발전시킨 사헌부가 있었어요. 사헌부에서는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밝혀내 처벌하거나 관직에서 물러나게 했어요. 또한 억울한 일을 당한 백성들이 신문고를 치거나 민원을 낸 경우에 이를 철저히 조사하여 피해가 없도록 하였고, 과거시험이나 각종 행사의 감독관 일을 보기도 했어요.

사헌부의 관원들은 때때로 왕과 의견이 달라서 마찰을 빚을 때가 있었어요. 그들은 그때마다 뜻을 굽히지 않고 옳은 말을 했어요. 그래서 사헌부 관원은 벼슬은 물론 소중한 목숨까지 내놓을 각오로 왕 앞에서 옳은 말을 할 수 있는 강직하고 학식이 풍부한 사람만을 엄선했어요.

이야기한 토막
“사약까지 받은 대사헌 조광조”
조광조는 중종 때 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대사헌 (사헌부의 으뜸 벼슬)에까지 올랐어요. 조광조는 젊고 개혁적인 관리로서 옳은 말을 거침없이 잘하는 것으로 유명했어요.

조광조는 대사헌으로 있으면서 중종이 연산군을 내쫓고 왕이 될 때 공[功]을 세운 신하[臣] 즉 공신(功臣)이 잘못 책정되었다고 주장했어요. 공신의 숫자가 실제보다 많기 때문에, 공이 없는 신하들은 공신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했어요. 조광조가 공신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은 모두 76명이었어요.

그러나 조광조의 이러한 개혁에 대한 주장은 그 동안 공신으로 인정받으며 권세를 누려왔던 홍경주, 남곤, 심정 등 반대파들의 큰 미움을 샀어요. 이들은 후궁들과 짜고 왕에게 조광조 일파가 당파를 조직하여 조정을 문란하게 한다고 모함했어요.

나뭇잎에 과일즙으로 "走肖爲王(주초위왕)" 즉 조(趙)씨가 왕이 된다는 글씨를 써서 벌레가 파먹게 한 다음에 이것을 왕에게 바쳐 조광조가 반역을 하려 한다는 의심을 품게 했어요. 중종은 조광조 등 개혁세력이 늘 사리를 따지며 도덕정치를 주장하고, 언제나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과격한 말과 행동을 하는데 싫증을 느끼던 터라, 홍경주 등의 말에 따라 조광조를 능주(전라남도 화순)로 귀양보냈어요.

그리고 얼마 후에 중종은 조광조에게 사약을 내렸어요. 뒷날 조광조가 억울하게 죽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선조 때 영의정의 벼슬이 내려졌어요.

그리고 사헌부는 관리들에 대한 "직무감찰"에만 그치지 않고, 억울한 사람의 누명을 벗겨주었어요. 또 정기적인 물품조사 등 "회계검사"도 했어요. 이런 업무가 직무감찰을 주로 담당한 고려시대의 어사대와 다른 점이지요. 사헌부는 조선시대 말기인 고종 때 도찰원으로 바뀌었다가 나라가 점차 힘을 잃어감에 따라 없어졌어요.

이야기한 토막
“아들의 과거시험 합격을 부탁했다가 파직된 사람”
훈련관 제조로 있던 변효문이라는 사람의 아들이 무과에 응시했어요. 이때 변효문은 시험관에게 과녁에 맞지 않은 화살을 맞은 것으로 해달라고 했어요. 이 사실이 사헌부의 관원인 감찰에게 발각되자 변효문은 그 감찰에게도 눈감아 달라고 청했어요. 그러나 감찰은 이 말을 듣지 않고 사헌부에 보고했어요. 그래서 의금부에서 변효문을 심문한 뒤에 멀리 유배를 보내어 다시는 벼슬길에 나오지 못하도록 했어요.

각 지방에 대해서는 행대감찰을 파견하여 백성들의 생활형편과 지방관리들의 행정을 살피도록 했어요.

이야기한 토막
“행대감찰로 파견된 김종서”
세종이 즉위하던 해 (1418년)에는 전국에 흉년이 들어 굶주리는 백성이 많았어요. 특히 강원도에 큰 흉년이 들었어요. 세종은 강원도 관찰사에게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도록 지시하는 한편 김종서를 강원도의 행대감찰로 보냈어요.

김종서는 강원도 백성들의 형편을 살펴 장계(지방에 파견된 관원이 임금에게 글로 보고하는 것)를 올려 강원도 여러 지역의 굶주리는 백성 729명에게 조세를 면제해 주라고 보고했어요. 몇몇 신하는 이 장계를 보고 조세를 면제해줄 수는 없다고 반대했어요.

하지만 세종은 "백성이 굶어 죽는다는 말을 듣고도 조세를 거두는 것은 차마 못할 짓이다. 오히려 창고를 열어 곡식을 나누어준다고 해도 부족할까 걱정이거늘 행대감찰까지 보내 형편을 살피게 해놓고 굶주린 백성에게 조세를 거둘 수는 없다"라고 하면서 김종서의 요청대로 조세를 면제해 주었어요.

김종서는 또 경차관(곡식의 손실을 조사하고 백성의 형편을 살피기 위해 파견하는 임시 관리) 김습이 흉작인데도 풍작으로 서류를 거짓으로 꾸몄으며, 주한, 유복중, 허방, 조총 등 네 명의 수령이 토지의 조세를 줄여서 보고하였다고 했어요.

세종은 "이런 자들이 바로 백성을 등쳐먹는 자들"이라면서 사헌부에 엄중히 조사하게 했어요. 사헌부는 이 사건을 조사하여 행대감찰 김종서의 보고가 사실임을 확인하고 왕에게 법률에 따라 이들을 벌 주도록 보고했어요.

중종 때부터 왕은 행대감찰보다 신분이 높은 어사, 특히 암행어사를 지방에 몰래 파견하여 지방관리들이 올바른 행정을 펴고 있는지 조사하고, 백성들의 형편을 살피도록 했어요. 암행어사는 지방관리들의 잘잘못을 가려 왕에게 상을 주거나 처벌 또는 관직에서 물러나게 하도록 건의했어요. 지방관리의 횡포가 너무 심할 경우에는 암행어사가 직접 처벌하고 나중에 왕에게 보고하기도 했어요.